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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일자리 압박하는 정부] 부서 정원 맞먹는 단기직 할당..."公기관도 입사자도 상처"

■'단기직 채용계획' 조사 논란
수요조사라지만...'일자리 못 늘린 사유서 제출' 요구도
공항 인근 제초작업·안내데스크 등 단순 알바가 대부분
'질 좋은 일자리' 정부 기조와 어긋나..."정책 수정해야"

[단기일자리 압박하는 정부] 부서 정원 맞먹는 단기직 할당...'公기관도 입사자도 상처'
10일 서울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단기 일자리 실적 및 계획 현황조사’. 최근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에 발송한 이 파일에는 ‘채용 확대 가능 인력’을 제시하고 “확대가 곤란할 시 사유까지 작성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공공기관들에 발송한 ‘2017·2018년 단기 일자리 실적 및 계획’ 조사표를 보면 지난 2017년 9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단기 일자리 실적과 올해 같은 기간 단기 일자리 실적·계획을 제출하도록 돼 있다. 구체적으로 채용일과 채용인원은 물론 채용 확대 방안과 부서별 담당자, 연락처를 모두 기재하도록 했다. 채용 확대가 곤란할 경우 그 사유도 작성하라고 안내했다. 지난해와 올해 실적을 비교해 그 규모가 줄어들거나 증가 폭이 석연치 않으면 언제든 정부가 공공기관 담당자를 직접 압박할 여지를 둔 것이다. 단순한 수요조사 차원이라는 정부의 설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대목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각 공공기관이 수요조사 이후 단기 일자리 채용 계획을 정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가 경영평가와 각종 규제권한을 가지고 있어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기 일자리 하나가 급해”…고용참사에 총동원=정부가 공공기관들에 정규직이 아닌 단기 일자리 채용이라도 늘려야 한다고 압박하는 것은 최근 악화하는 고용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외환·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취업자는 통상 전년보다 매달 20만~40만명씩 늘어왔지만 올 2월부터는 그 증가 폭이 13만명을 밑돌고 있다. 특히 7월에는 5,000명, 8월에는 3,000명까지 떨어졌다. 12일 발표될 예정인 지난달 취업자 수 역시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고용동향은 매월 15일이 포함된 1주일간 1시간 이상만 일해도 취업자로 집계된다. 한 주에 52시간을 근무해도, 1시간을 근무해도 모두 취업자로 집계돼 해당 일자리의 질은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단기직을 늘려서라도 최악의 ‘고용참사’를 면피하려는 유인이 여기서 생긴다. ‘질 낮은 일자리’라도 늘려 수치상 드러나는 고용참사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지금껏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단기일자리 압박하는 정부] 부서 정원 맞먹는 단기직 할당...'公기관도 입사자도 상처'

◇“정규직화도 벅찬데”…벙어리 냉가슴, 공공기관=
공공기관 입장에서도 부담이 크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 아직 1만명의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 작업이 초기 단계다. 60여개의 인천공항 협력업체에 소속된 9,285명의 비정규직 근로자 중 자회사 정규직이 된 인원은 20% 수준에 불과하다. 아직 정규직화 부담이 끝나기도 전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1,000여명의 단기직 근로자를 뽑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공사의 한 직원은 “단기직으로 오는 분들은 단순한 현황자료를 만들거나 할 일이 없으면 현장에서 알아서 활용하라는 식으로 할당됐다”며 “정규직에 지원할 때 그분들이 가점을 받는 것도 아니라서 두 달만 일하고 나가게 되면 그분들의 상처도 매우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서 정원의 절반이 넘는 단기직을 추가로 고용해야 하는 부서도 많다. 인력 활용의 효율은 염두에도 없는 셈이다.

재무적 부담도 크다. 1,000명의 체험형 청년인턴과 100~200명의 저소득·노인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코레일은 적자다. 2016년까지 흑자 행진을 이어가다 SR 분리, 통상임금 소송비용 등 때문에 지난해 5,267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여기에 6,800여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일자리의 수준도 부실하다. 한국공항공사는 공항소음 대책 사업과 공항 인근 제초 작업, 안내데스크 단기인력 200명을 뽑겠다고 했는데 사실상 아르바이트와 다름없는 질 낮은 일자리들이다.

◇무리수 정책 ‘테스트베드’ 신세로 전락=정부가 공공기관의 경영 여건 등을 고려하지 않고 정부 정책을 주입하는 방식은 꾸준히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해외자원개발 사업으로 정부의 정책을 떠안았던 한국석유공사·광물자원공사·한국가스공사가 적폐 기관으로 낙인찍힌 게 대표적이다. 공공기관이 정부 정책 기조에 맞추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문제는 잘못됐을 때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고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 실패로 공공기관의 부채가 늘어나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결국 그 빈틈은 국민의 세금으로 메우게 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행정학과 교수는 “질 나쁜 일자리, 질 좋은 일자리를 떠나서 공기업들이 자기 책임에 따라 채용해야 한다”며 “정부가 여전히 과거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공기관들에 단기 일자리 창출을 사실상 압박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구체적인 것까지는 잘 모른다”며 “수요조사만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세종=강광우·정순구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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