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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야단법석] '강요 피해자' 아닌데 자유 얻은 신동빈... 대법원 '재벌 봐주기' 논란

2심은 수동적 뇌물 전제로 辛회장 석방
전원합의체는 朴·崔 강요죄 무죄 판단
대법 '강요·수동성 인정 안했다'면서도
17일 징역형 집행유예는 그대로 확정
민변 "법률심이라도 비판 받아들여야"

[서초동 야단법석] '강요 피해자' 아닌데 자유 얻은 신동빈... 대법원 '재벌 봐주기' 논란

“기자 분이시죠? 법원이 정말 공정하다고 생각하세요?”

지난 17일 오전 11시20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법정에 홀로 나온 한 60대 여성이 자신의 상고심 결과에 대해 억울하다며 기자를 붙잡고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너무 어려운 주제라 딱히 입을 떼지 못했다. 고개를 돌리니 이번엔 한 무리의 양복 신사들이 우르르 법정에서 쏟아졌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 선고를 참관한 뒤 나오는 롯데그룹 임직원들이었다. 하나같이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 60대 여성의 얼굴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신동빈(사진) 롯데그룹 회장이 상고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확정받은 덕이었다. 이병희 롯데그룹 상무는 법정을 나온 직후 취재진 앞에 서서 밝은 표정으로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지적해 주신 염려와 걱정을 겸허히 새기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신뢰받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 회장 상고심 결과를 두고 법조계에 또다시 법원의 ‘재벌 봐주기’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신 회장의 1심과 항소심, 상고심, 그리고 ‘국정농단’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뇌물공여 강요 여부와 수동성을 조금씩 다르게 해석하는 사이 신 회장이 어부지리로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법원이 신 회장의 강요 피해나 수동적 뇌물공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서도 형 집행유예는 그대로 확정하는, 다소 모순된 결론을 내놓으면서 논란을 부추겼다는 평가다.

[서초동 야단법석] '강요 피해자' 아닌데 자유 얻은 신동빈... 대법원 '재벌 봐주기' 논란

◇朴강요죄 유죄 상태서 신동빈 풀어준 2심=신 회장은 2018년 2월 국정농단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재벌 총수에 대한 판결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1심 재판부는 신 회장이 잠실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재취득이라는 명확한 현안을 두고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상납해 묵시적 청탁을 했다고 봤다. 별도 재판부가 심리한 ‘경영비리’ 사건 1심은 신 회장에 대해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후 신 회장 측 요청으로 국정농단과 경영비리 사건을 병합해 진행한 2심은 1심과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2심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신 회장에 대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신 회장은 구속 234일 만에 석방됐다. 사건을 다 더하고 유·무죄 판단이 비슷했는데도 1심 국정농단 형량 하나보다 더 적은 형을 받는 기적이 일어났다. 재벌 총수에 대한 양형 공식인 ‘3·5 법칙(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부활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신 회장 2심에서 1심과 달라진 판단은 서미경씨와 그 딸 신유미씨에게 급여를 지급했다는 횡령 혐의가 일부 유죄에서 무죄로 바뀐 부분 하나였다. 정작 이 혐의는 전체 혐의 가운데 양형에 미친 효과가 미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 회장의 형량을 실질적으로 가른 요인은 롯데가 지난 2016년 5월 K스포츠재단에 건넨 70억원의 성격이었다.

롯데의 K스포츠재단 70억원 추가 출연을 뇌물죄로 처벌하는 게 맞다는 인식은 1심과 2심 모두 다르지 않았다. 다만 신 회장이 잠실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재취득을 목적으로 적극적으로 뇌물을 공여했다고 본 1심과 달리 2심은 신 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요에 의해 수동적으로 반응했다고 판단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지원 요구가 가벼운 제안 정도가 아니라 이에 불응할 경우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며 “수뢰자의 강요행위로 인해 의사 결정의 자유가 다소 제한된 상황에서 지원금을 낸 신 회장에게 뇌물공여의 책임을 엄히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시했다.

신 회장 2심 재판부의 결론엔 그해 8월24일 뇌물 관련 강요죄를 인정한 박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 2심 판결의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모두 2심에서 강요죄를 일부 유죄로 이미 인정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신 회장 사건에 대한 판단 역시 이를 상당 부분 전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강요죄가 인정되면 신 회장도 이에 따른 피해를 어느 정도 입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 논리는 실형과 집행유예를 가른 결정타로 작용했다.

[서초동 야단법석] '강요 피해자' 아닌데 자유 얻은 신동빈... 대법원 '재벌 봐주기' 논란
구속 상태에서 항소심에 출석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연합뉴스

◇전원합의체 강요죄 무죄 판단에도 집행유예 그대로 확정=상황은 올 8월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박 전 대통령과 최씨 강요죄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다시 한 번 반전됐다. 전원합의체는 최씨 판결문에서 강요죄를 무죄 취지로 판단하며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과 신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해 직무행위를 매수하려는 의사로 적극 뇌물을 제공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신 회장에게 공포심 등을 일으킬 만한 해악을 고지했다고 볼 사정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과 신 회장 모두 강요죄의 피해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제3자 뇌물공여 범죄자라는 판단이었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의 요구가 이에 불응할 경우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는 신 회장 2심 판결과 완전히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선 신 회장 2심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대법원 3부는 지난 17일 결국 신 회장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신 회장 상고심 판결문에서 “원심에 부정한 청탁, 대가관계에 대한 인식, 강요죄의 피해자와 뇌물공여자 지위의 양립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신 회장 2심이 뇌물 혐의를 어찌 됐든 무죄가 아닌 유죄로 인정한 이상 큰 틀에서 전원합의체 판단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양형 부당으로 상고할 수 있는 대상은 10년 이상의 징역형 판결만 해당하기 때문에 대법원은 신 회장 형량에 대해 별도로 판단하지 않았다. 애초 K스포츠재단 뇌물 혐의에 대해선 신 회장만 상고했을 뿐 검찰은 2심 판단에 불복하지도 않았다.

[서초동 야단법석] '강요 피해자' 아닌데 자유 얻은 신동빈... 대법원 '재벌 봐주기' 논란

이 과정에서 언론은 ‘대법원이 신 회장을 수동적 뇌물공여자로 인정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다. 신 회장 대법원 판결문에 ‘수동적’이라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2심 판결 취지를 인용하지 않고는 일반인들에게 대법원 판결 취지를 설명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법원은 이날 저녁 ‘신동빈을 수동적 뇌물공여자로 인정한 것이 아니니 참고해 달라’는 공지문을 황급히 기자단에 배포했다.

언론과 여론의 해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신 회장 본인에게도, 일반인들에게도 중요한 건 어차피 신 회장의 실형 여부였다.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법원의 법리 주장에 귀 기울이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이에 대해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지난 18일 논평을 내고 “대법원이 신 회장을 적극적인 뇌물공여자로 판단해 놓고 강요의 피해자로 본 항소심 판단을 변경하지 않았다”며 “비록 법률심의 한계로 인해 항소심의 양형 판단을 유지하기는 했으나 ‘재벌 봐주기’라는 비판을 대법원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국내 5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재벌이 강요에 의해 돈을 줬다고 인정한 것인지, 아닌지 기업 입장에서도 헷갈릴 수밖에 없는 결과”라며 “대기업 오너와 관련한 뇌물 성격 판단은 판결이 거듭될수록 어떤 입장에서 대응해야 할지 정리가 안 된다”고 답답해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서초동 야단법석] '강요 피해자' 아닌데 자유 얻은 신동빈... 대법원 '재벌 봐주기' 논란
17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공판 뒤 이병희 롯데그룹 상무가 입장을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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