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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956년 수에즈 위기의 끝은?

유엔, 英·佛·이스라엘 철수 결의

[오늘의 경제소사] 1956년 수에즈 위기의 끝은?
수에즈 운하

1956년 11월7일 수에즈 운하(사진)의 주요 지역을 점령한 영국과 프랑스·이스라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유엔 총회가 침공군의 전면 철수와 유엔경찰군 파견을 결의했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유엔이 결의해도 무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의안을 주도한 나라가 미국과 소련이었으니까. 수에즈 철군 결의안은 냉전 시절에 미국이 서방 동맹국을 향해 반대표를 던진 유일한 사례로 손꼽힌다. 미국은 왜 동맹국들을 압박했을까. 자국의 석유 이권을 의식해서다.

사건의 발단은 약 100일 전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선언. 아스완하이댐 건설을 추진하다 미국의 약속 파기로 돈이 궁해진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은 각종 사회간접자본 확충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했다. 주식매매를 통해 최대주주에 오른 영국과 공사비를 댔던 프랑스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수차례 협상이 깨진 뒤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까지 끌어들여 군사작전에 들어갔다. 10월 말 개전 이래 이스라엘군의 진격 속도가 워낙 빨라 늦게 전장에 투입된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문제는 미국의 반발이 예상보다 훨씬 컸다는 점. 재선 막바지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영국 수상 관저에 직접 전화해 거친 언사를 퍼부었다. 철수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유럽에 대한 석유 공급을 끊겠다는 협박에 영국과 프랑스는 재빨리 군대를 뺐다. 미국의 완벽한 승리로 끝난 수에즈 철군은 보이지 않은 흔적도 남겼다. 무엇보다도 아랍 민족주의가 씨앗을 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물론 미국과 소련까지 움직이는 나세르 대통령에 대한 아랍 민중들의 환호는 4차 중동전(1973년) 직후 ‘석유 무기화’ 정책으로 이어졌다.

믿었던 미국에 발등을 찍힌 이스라엘은 무기 국산화와 자주국방에 매달렸다. 소련은 지구촌의 관심이 수에즈에 쏠린 틈을 타 헝가리 민주화운동을 짓밟았다. 프랑스는 독자 행보를 걸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탈퇴하고 숙적 독일과 연합부대까지 창설하며 유럽 국가들을 규합하려 애썼다. 가장 타격을 받은 나라는 영국. 미국은 외환위기를 겪고 있던 영국을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옥죄었다. 세계를 아우르던 제국이었다는 자존심도 완전히 사라졌다. 문제는 영국과 같은 노욕(老慾)뿐 아니라 미국처럼 과도한 예산을 국방비로 쏟으며 모든 것을 참견하는 시스템도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역저 ‘강대국의 흥망’에서 “로마부터 영국까지 과도한 군비로 쇠망했다”는 폴 케네디의 충고가 떠오른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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