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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기획·연재
'짠내'나는 청량리는 어떻게 '상전벽해' 노른자 땅이 됐나 [역지사지 EP.1]

'청량리 588' 떠오르던 곳이 부동산 투자지로 급부상하기까지

미주아파트, 홍릉 부흥주택 단지 등 직접 가봤다







여행가는 길에 빠질 수 없는 역 ‘청량리’

70~8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의 대표 부도심이었던 ‘청량리’

하지만 개발이 더디고 노후화되면서 ‘짠내’ 나는 서울 강북권으로 불리다 이제서야 빛을 보고 있는데,그 과정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진짜 부동산을 알고 싶다면 역사와 함께 봐야겠죠. 역사와 부동산의 만남, 역지사지 1화 청량리편 지금 시작합니다.

△논밭만 가득했던 ‘동교’에서 철도 교통의 요지로

1974년 8월 서울역부터 청량리역까지 이어지는 서울 지하철 1호선 최초 구간이 개통되며 거쳐보지 않은 사람이 없는 모두의 발길이 닿는 지역입니다.

청량리 지명은 이곳에 있던 청량사(淸凉寺)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옛날 청량사는 경복궁 동쪽에 있던 바리봉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숲은 수목이 울창하고 맑은 샘물이 흐르는 데나 남서쪽은 트여서 늘 시원했다고 해요. 청량한 바람이 불었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 전까지 이 지역은 동대문 밖의 교외 지역이라는 뜻의 ‘동교’로 불릴 만큼 낙후된 지역이었습니다. 신농씨를 모시고 농사를 권하는 ‘선농단’이 이곳에 있었습니다. 조선의 왕들은 이곳에서 한해의 풍년을 기원했죠.

하지만 청량리는 조선 시대부터 수도인 한양을 찾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동쪽 관문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여행객을 위한 숙소였던 ‘보제원’(普劑院)까지 있었죠. 사람들의 이동이 빈번한 교통의 요지였지만 발전이 더뎠던 이유는 풍수지리학적 측면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다름 아닌 서울(한양)의 동쪽이라는 특성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양의 주산인 북악산이 왼쪽으로 치우쳐 있어 산의 기운을 받지 못해 흥인지문(동대문)의 ‘지’ (之)자는 허약한 산세를 보충한다는 뜻에서도 알 수 있죠. 정착하지 않고 늘 스쳐 가기만 하다 보니 발전이 늦어 노후화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청량리가 비로소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899년 5월 17일 우리나라 최초의 전차가 개통되면서부터입니다. 당시만 해도 첨단 문명의 상징으로 대표되던 전차가 논밭만 가득하던 청량리까지 연결된 것에 다소 의아함을 느낄 분도 많을 것 같은데요. 여기에는 외세의 침략 속에서 나라를 지키지 못한 비운의 왕 고종과 명성황후의 애틋한 사랑이 숨겨져 있습니다. 당시 혼돈의 정세 속에서 일본인의 손에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능인 ‘홍릉’이 청량리에 있었는데요. 전차를 들여온 미국인 사업가 헨리 콜브란은 고종이 쉽게 홍릉을 찾을 수 있도록 노선을 청량리까지 두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왕에게 했고 이를 고종이 받아들인 것이죠.

사람들의 뇌리 속에 청량리의 가장 유명한 곳으로 각인된 곳은 ‘청량리 588’로 불리는 집창촌입니다. 중앙선이 개통되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청량리 588’은 서울역, 용산역 등에 있었던 집창촌이 모두 없어지면서 최대 규모의 집창촌으로 알려졌었죠. 풍수학적으로 봤을 때 집창촌은 주로 이동이 빈번한 지역이나 강한 기가 발산되는 곳, ‘즉’ 군대가 주둔하거나 군수물자를 이동시키는 지역에서 발달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음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양기가 강한 곳의 변두리나 주변에 음기가 집결되는 시장을 끼고 발달한 경우가 많습니다. 청량리에 집창촌이 생겨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음기가 강한 집창촌으로 인해 청량리 지역은 화기가 뿜어 나오는 매우 기가 센 지형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까닭인지 현재 롯데백화점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했다고 하죠. 1960년대 백화점의 전신인 대왕코너로 영업을 시작한 이후 3번의 화재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대왕코너가 폐쇄되고 2010년 청량리역사가 새로 들어섰지만 화재에 대한 걱정은 여전했습니다. 이때 백화점 주변 곳곳에 해태상이 등장했습니다. 해태는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고 행복과 좋은 일을 가져다준다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알려져 있는데요. 다시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해태상을 곳곳에 세운 것이죠.



△재건축·재개발로 변모하고 있는 2020년대 청량리

‘청량리 588’은 최근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돼, 롯데캐슬 SKY-L65가 들어서게 됐습니다. 롯데캐슬 SKY-L65는 65층의 초고층 주상복합단지인데요. 이 지역에 초고층 건물을 올린 이유를 민간신앙에서 찾는 ‘카더라’도 존재합니다. 집창촌 같은 여성의 한이 서려 있는 자리는 높은 건물을 세워서 나쁜 기운을 눌러야 한다는 믿음이 그 이유라는 얘기죠.



지난해 7~8월 롯데캐슬 SKY-L65가 성공적으로 분양을 마친 상태입니다. 이곳에는 최고 65층(지상 약 200m) 주상복합건물 4개 동과 호텔, 백화점, 공연장 등을 갖춘 42층 랜드마크 타워 1개 동이 건설되고 있습니다. 1순위에 1만 7,229명이 몰렸고 일부 타입은 분양가 9억원을 초과했지만 모두 완판된 상태입니다.



청량리 지역에서도 가장 ‘핫’한 지역 중 하나는 청량리 미주아파트입니다. 청량리역과 길 하나를 두고 들어서 있는 미주 아파트 단지는 1960년대 전까지만 해도 과거 경성제대 예과 건물로 쓰이던 붉은 벽돌 건물과 넓은 운동장으로 이뤄진 대단히 황량한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초 이곳이 비워지면서 주변에 작은 집들이 들어서고 1970년대 초 라이프 그룹이 이곳을 구매해 아파트 단지를 올리면서 현재 모습이 됐죠. 1978년 준공된 청량리 미주아파트는 현재 8개동, 1,089가구 규모인데요. 전농뉴타운이 개발되기 이전까지 청량리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단지였습니다.

미주아파트를 지나 좀 더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예전 명성황후 홍릉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남양주시로 옮겨간 명성황후의 능이 있던 곳엔 ‘홍릉 수목원’이 들어섰고 그 주변에는 한국개발연구원, 한국과학기술원 등이 밀집해 있습니다. 홍릉수목원에는 이곳에 홍릉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작은 비석과 왕이 물을 마셨던 어정만 남겨져 있습니다. 고종은 1919년 1월 경운궁에서 숨을 거둔 후 남양주시에 조성된 능에 고종과 명성황후를 합장하며 흔적만 남아있게 된 것이죠.

홍릉은 청량리 제기동과 도시재생 뉴딜 사업지로 선정돼 ‘글로벌 바이오 산업혁명의 심장’이란 비전과 함께 2020년부터 6년에 걸쳐 사업을 추진 중인 따끈따끈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홍릉 등 조선 시대 왕릉 근처에는 유독 갈빗집이 많은데요. 한성희 씨가 지은 ‘조선왕릉의 비밀’이라는 책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농경사회라서 소를 중요시했고 국가에서 관리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함부로 소를 잡을 수 없었고 평소에 쇠고기 맛을 보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왕릉에서 제례를 할 때는 소를 잡았고 주변에 몰려든 백성들이 비로소 쇠고기를 접할 수 있었고 능 근처에서 소갈비 요리가 발달 됐고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죠.



청량리 지역에는 한국 주택사와 관련돼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고종의 후궁인 엄비가 잠들어 있는 영휘원 건너편에 자리한 부흥주택이라 불리는 주택촌입니다. 부흥주택은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에 주택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 지은 것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주택공사와 같은 역할을 했던 주택영단이 56년까지 3,000여채에 이르는 공공주택을 공급했는데 그 중 하나가 부흥주택입니다. 최초의 공공주택이라고 할 수 있는 부흥주택이 들어선 곳은 서울의 성북구, 서대문구, 동대문구 등 그 당시 변두리 지역이었습니다. 현재 청량리2동 홍릉 단지, 정릉동 ‘정든마을’, 이화동 낙산마을에 아직 부흥주택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부흥주택 건설에는 육군 공병대가 동원됐습니다. 원자재는 유엔한국재건단(UNKRA)의 지원에 의존했죠. 이는 모두 치열했던 전쟁 직후라는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1955년 12월 청량리 부흥주택 완공식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각부 장관, 서울시장이 총출동했습니다.

다양한 사연을 품은 청량리. 예로부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았지만 정작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아 낙후된 처지에 놓였다가 눈에 띄게 바뀌고 있는 청량리 일대.

‘상전벽해 청량리’라는 말처럼 그 가치가 어디까지 치솟을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이종호·정수현기자 차현진인턴기자 phillies@sedaily.com

■부동산을 사야 돈을 번다는 건 알지만...도대체 어디를 사야 “잘 샀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끊임없는 정부의 규제와 발빠른 시장의 움직임에 오늘도 하루에 몇 번씩 마음이 왔다~갔다~하는 우리들. 조금 더 진중하고 차분하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살고 싶은 동네에 대해 완벽히 아는 것 뿐이겠죠? 역사를 모르고 부동산을 논할 수 없다! ‘역지사지(歷地史知)’와 함께해요!

*팟빵 ‘히-스테이트’에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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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미디어센터 이종호 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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