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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 따라 굽이굽이 6,700㎞..."방어용"-"침략 산물" 논쟁 여전

[최수문의 중국문화유산이야기] <6> '농경·유목의 경계선' 만리장성

몽골과 만주에도 옛 장성 일부 존재

유목민족-농경세력 힘 균형 이루던

15~16세기 명나라때 현재 모습 갖춰

"단둥 호산장성이 동쪽 끝" 中 주장에

국내학계 "그곳은 고구려시대 박작성"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만리장성 모전욕장성 구간을 한 관광객이 오르고 있다. 사진의 왼쪽이 방위로 북쪽인데 장성은 동서로 산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중국 만리장성을 직접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볼 생각 없는 사람이라도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이라는 말은 들어봤을 듯하다. 서구에서 만리장성(Great Wall)과 인터넷 방화벽(Firewall) 표현을 합친 것으로 중국의 인터넷 감시·검열 시스템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한 후 홍콩에 대한 인터넷 검열을 강화하면서 ‘홍콩도 만리방화벽에 갇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만리방화벽은 해외의 해커가 중국의 기기에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인들이 해외의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을 통제하려는 취지다. 이는 중국이 자랑하는 문화유산인 만리장성의 역할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만리장성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중국에서는 대체로 만리장성이 북방 유목민족을 막기 위한 고난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풍요로운 중국을 침략하려는 외적을 막기 위해서는 성벽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 밖의 학계에서는 만리장성이 중국 측 침략의 결과물이라는 입장이 강하다. 중국이 팽창하면서 북방 유목민 지역을 침략한 후 점령을 유지하기 위해 성벽을 쌓았고 이것이 장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건설된 역대 만리장성 유적들의 분포 지도를 보면 성벽은 북쪽으로 몽골 영역 깊숙이, 또 동북 쪽으로 만주에도 뻗어 있다. 중국이 팽창하면서 다른 민족의 영토를 차지하고 여기에 장성을 세운 방증이다. 이는 방어용이 아니라 점령유지용이라고 보는 게 맞다. 원래의 명칭은 ‘장성’인데 일반적으로 길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만리’가 붙었다.

현재 우리가 흔히 보는 만리장성은 명나라 시기인 15~16세기에 만든 것이다. 이 시기는 2,000여년 역사에서 중국 농경민족이 북방 유목민족들과 힘의 균형을 이루던 흔치 않은 시기다. 명나라는 서쪽 간쑤성 가욕관(자위관)에서 동쪽 허베이성 산해관(산하이관)까지 장성을 쌓아 서방·북방의 유목민족, 동방의 만주세력 등에 대응하고자 했다. 간선과 지선을 합쳐 전체 길이는 대략 6,700㎞ 정도다.

만리장성은 중화제국이라는 전제왕조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늘 억압에 시달리던 농경민의 입장에서는 자유로운 유목생활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중국의 장성은 해방을 꿈꾸는 중국인들이 다른 세계로 이탈하는 것을 막는 역할도 했다.

기원전 3세기 진나라 시황제가 장성을 처음 만들었다고 대개 말하지만 절반만 사실(史實)이다. 진나라는 통일 이전에도 있었던 춘추전국시대 각국의 성벽을 연결했을 뿐이다. 다만 장성으로 연결됐을 때 최대의 효과가 나온다는 것을 깨달은 첫 시대가 진나라 때다.

이후 2,000년 동안 흥망성쇠를 거듭한 중국의 각 왕조는 나름대로 장성을 만들었다. 물론 장성이 필요 없거나 오히려 파괴한 때도 있었는데 주로 북방민족들이 중국을 점령해 세운 왕조에서 그랬다. 예를 들면 여진족의 금나라와 몽골족의 원나라 시대에는 장성이 오히려 교류를 막는 장애물이었다. 그런 원나라를 밀어내고 중국을 재통일한 명나라는 역시 장성 만들기에 공을 들인다. 지금 베이징의 북부에 남아 있는 장성이 그 결과물이다.



베이징 만리장성 가운데 가장 절경이라고 할 수 있는 팔달령장성 모습.


베이징 방문자가 만리장성을 보기를 원하면 대개 팔달령(바다링)장성 구간으로 안내를 한다. 베이징 시내에서 60㎞ 정도 떨어져 있으니 별로 멀지도 않다. 팔달령장성은 복원 상태도 좋고 특히 정상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절경이다.

베이징에서 팔달령장성 외에도 유명한 곳으로 사마대(쓰마타이)장성, 모전욕(무톈위)장성, 수(水)장성 등이 있다. 만리장성은 일부는 끊어지고 일부는 보존을 위해 출입이 불허된 상황에서 관광이 허락된 구간만을 끊고 각각 이름을 붙여 공개한 데서 이렇게 불리게 됐다.

만리장성은 기본적으로 산속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물론 일단 올라보면 산 능선을 타고 동서로 끝없이 뻗은 성벽의 모습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힘든 산행에 성공한 관광객들이 한 번쯤 기념사진을 찍는 ‘호한석(好漢石)’이라는 것이 있다. “만리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不到長城非好漢)”라는 말을 마오쩌둥이 했다는데 이 문장을 새긴 돌비석이다. 이 ‘호한석’을 영문표기로 ‘히어로 스톤(Hero Stone)’이라고 적어 놓은 점은 흥미롭다.

팔달령장성에 있는 ‘호한석’인데 마오쩌둥의 친필 글씨를 새겨놓았다.


만리장성을 언급할 때 한국인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만주의 랴오닝성 단둥시에 있는 ‘호산장성’이다. 압록강 변에 있는 이 성은 중국 측이 기존 산하이관 대신 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갑자기 주장하는 곳이다. 500살이 넘는 장성치고는 지나치게 포장된 채로 관광객을 맞고 있다.

물론 한국 학계에서는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호산장성이라고 불리는 곳이 사실은 고구려 시대 ‘박작성’이라는 설명이다. 박작성은 고구려의 젖줄이었던 압록강 하구를 지키는 요충지였다. 중국의 만리장성 서적들을 보면 호산장성을 표시해놓기는 했지만 실제 세부적인 설명에서는 언급도 하지 않는다. 책을 집필하는 이들도 딜레마를 느꼈을 듯하다.

/글·사진(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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