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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청와대
“적과 동지 갈라 대중 독재 꾀하는 ‘연성 파시즘’···장기집권은 백일몽” [청론직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사법체계 교란·정보 조작·선동 정치로 민주주의 위기

삼권분립 형해화, 포퓰리즘적 대중 동원 정치 일삼아

시민단체 등 정권연대세력, 가치뿐 아니라 이권 공유

지리멸렬 野·코로나 덕에 문 대통령 지지율 40% 유지

민생 경제 악화로 지지층 이탈…정권심판론 대두될 것

윤평중 한신대 교수가 24일 경기도 오산 한신대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반독재 민주화 경력을 자랑하던 문재인 정권이 한국 민주주의를 배신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오승현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회에서 5부 요인과 만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나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했던 모습은 헌법에 정해진 삼권분립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권력분립을 존중하고 책임총리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삼권분립과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내걸었던 문재인 정권에서 외려 삼권분립 정신이 훼손되고 민주주의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8.5%에 달하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피플네트웍스리서치가 지난해 12월 유권자 1,0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합리적 정치철학자로 알려진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연성 파시즘’이라는 말로 작금의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규정했다. 윤 교수는 24일 경기도 오산 한신대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반독재 민주화 경력을 자랑하던 문재인 정권이 한국 민주주의를 배신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물리적 테러나 공권력의 겁박이 아니라 사법 체계 교란, 정보 은폐와 조작 등을 통해 연성 파시즘을 구축한다”면서 “문재인 정권의 연성 파시즘은 대중의 동의에 기초한 대중 독재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고 진단했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의 표명 사태를 계기로 문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민정수석은 권력 내부의 가장 핵심적인 자리인데 정권의 권력 행사 방식이나 인사 정책을 납득하지 못해 사의를 표했다는 것은 일종의 ‘징후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정권 핵심부에서 이견과 토론, 성역을 두지 않는 자기 성찰적 점검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조국 사태’ 이후 연성 파시즘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셨는데 민주공화국에서 파시즘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아이러니다.

△파시즘은 고정된 이념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파시즘 체제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작동 원리인 삼권분립이 형해화(形骸化)하고 포퓰리즘적 대중 동원 정치를 일삼는다. 열광적인 추종자가 있고 이들이 경배하는 통치자가 존재한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통치자는 무조건적으로 숭배한다. 일체의 비판을 용인하지 않는다. ‘무오류의 영도자’에게 정책 실패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을 연성 파시즘으로 규정한 이유는 뭔가.

△우리 사회에 아직 선거 등 민주제도와 공론의 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을 비판해도 군사정권 때처럼 끌려가 고문을 당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다.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 하지만 연성 파시즘은 물리적 테러나 공권력의 겁박이 아닌 사법 체계 교란, 정보 은폐와 가짜 뉴스 조작, 선전과 선동 등을 통해 구축된다. 친정부 언론과 어용 지식인, 시민단체 등이 합세해 가짜 뉴스를 양산하고 여론을 조작하면서 정권의 부역자를 자처하고 있다.



-일자리·부동산 관련 주요 경제정책이 실패했는데도 대통령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는데.

△소득 주도 성장, 탈원전, 부동산 등 모든 정책에서 참사 수준이다. ‘문빠’나 ‘대깨문’ 등 상당수 서민일 것으로 추정되는 열성 지지자들의 삶도 고달플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권력 운용술은 매우 탁월하다. 연성 파시즘을 적극적으로 구사하기 때문이다. 파시즘의 중요한 특징이 적과 동지의 이분법적 접근인데 문 정권은 적극적인 갈라치기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한다. 정책 실패로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편을 가른다. 나치 정권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는 “구체적 갈등 상황에서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를 결단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나치의 파시즘에서 지도자는 총통 히틀러였는데 총통(Fuhrer)은 독일어로 ‘이끄는 자’라는 의미다. 총통이 봤을 때 자기 편에 선 자는 정의롭고 그렇지 않은 자는 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전체주의 정권에서 적과 동지의 이분법은 레토릭(수사)에 그치지 않고 물리적으로 적을 절멸한다.

-자칭 ‘촛불 정부’가 전체주의로 치닫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한국 나이로 65세인데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의 강성 파시즘은 논외로 치고 1987년 체제 이후 6공화국에서 이런 식의 전체주의는 처음 경험한다. 이 정권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영구 집권을 위한 토대를 닦을 것인가에 온 정신이 팔려 있고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쳐낸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비리 의혹 등을 수사했던 검찰은 눈엣가시나 다름없다.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에 혈안이 됐던 이유다.

-대다수 시민 단체들마저 현 정권을 지지하거나 침묵하고 있는데.

△안토니오 그람시의 표현을 빌리면 ‘히스토리컬 블록(historical block·역사적 연대 세력화)’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정권 창출에 기여했던 시민 단체들이 동지로 묶이면서 명분과 가치만 함께하는 게 아니라 확실한 떡고물, 즉 이권을 공유하고 있다. 또 사회 곳곳의 중요한 자리에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다. 정권이 교체될 경우 잃을 게 많은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권력을 견제해야 할 시민 단체가 정권 재창출을 위한 연대 세력으로 전락했다.

-보수 야당이 대안 세력으로 떠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 자체가 총체적 실정인데도 40% 가까운 고정 지지율이 유지되는 첫 번째 이유로는 야당의 지리멸렬과 무능을 들 수 있다. 시민혁명적 성격을 부분적으로 가진 촛불 혁명에서 지금의 야당인 국민의힘에 민심의 퇴출 선고가 내려졌다. 하지만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았고 인적 쇄신 등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총선은 야당에 대한 최종 퇴출 선고였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일정한 기능을 하고 있지만 미래를 상징하는 인물은 아니다. 선거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심판인 동시에 미래의 비전을 누가 선점했는가를 둘러싼 경쟁이다. 그런데 국정 농단에 대한 분명한 사과와 인적 교체도 하지 않고 미래 비전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당이 대안 세력이 될 수 있겠는가. 또 하나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위기 상황이다. 지난해 초만 해도 민생 경제 파탄에 대한 정권 심판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예측하지 못했던 대재앙이 닥쳤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 여당에 지지율이 귀속되는 경향을 보인다. 만약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지금 광화문 광장은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촛불로 뒤덮였을 것이다. 코로나19가 국가적 재앙이고 국민들의 불행인데 정권에는 행운이었던 셈이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압승한데다 요즘도 대통령 지지율이 40% 안팎을 유지하면서 여당이 장기 집권을 꿈꾸고 있는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 추진, 비대해지는 경찰 권력 등 일련의 흐름을 보면 문 정권이 잘 드는 칼을 여러 개 손에 쥐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권력형 범죄나 국정 농단 등을 봉인하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여당의 계산대로 매끄럽게 진행되기는 어렵다. 우선 경제가 어렵고 민생 경제가 최악의 상황이다. 코로나19에만 책임을 돌릴 수 없다. 민생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데 재집권이 가능할까. 더구나 현 정권의 실력을 보면 민생 경제가 회복되기는커녕 악화일로로 치달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들은 지금의 연성 파시즘 체제로 20년, 심지어 50년 집권까지 연장하겠다고 꿈꾸는데 백일몽에 그칠 공산이 크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직접 성취했던 기쁨을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멀리는 1987년 민주화 과정, 가깝게는 촛불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달성했고 그만큼 정치 효능감(자신이 정치 체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신념)이 강하다. 군사 정권 하에서 강성 파시즘을 용인하지 않았던 국민들이 연성 파시즘을 계속 용인할까. 그건 불가능하다.

-결국 한국 정치를 낙관적으로 본다는 건가.

△역사를 100년 단위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긴 시각으로 가져가면 어떤 역사도 비관적으로 볼 이유가 전혀 없다. 진영 대립이 한국 사회를 둘로 쪼갠 것 같고 자칭 진보 정권이 사이비 진보, 연성 파시즘으로 치달으면서 퇴출해야 할 정치 세력으로 전락했다는 자괴감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 또한 역사적 성취를 위해 지불해야 할 불가피한 비용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사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운동권에 대해 상당한 부채 의식을 갖고 있었다. 강성 파시스트와 투쟁했던 순결한 전사라는 이미지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이들의 권력 남용과 위선, 몰염치를 목격하면서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운동권 세력에 대한 부채 의식을 해소하게 됐다. ‘수구 보수’가 민심에 의해 퇴출 선고를 받은 것처럼 ‘수구 진보’ 역시 역설적이게도 문재인 정부의 대활약 덕분에 다수의 민심에 의해 퇴출 통보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수구 보수가 재구성돼야 한다는 요구가 있는 것처럼 수구 진보도 21세기 한국 사회에 맞게 재구성돼야 한다는 성찰이 이뤄지는 것은 좋은 신호다. 이제는 진보냐 보수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국정을 얼마나 잘 운영하는가, 어떻게 한국 국민들을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도록 만들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21세기 국제 정세에서 대한민국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끌고 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년이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미래지향적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본다.

He is…

1956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서던일리노이주립대 철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한신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정치철학을 가르쳐왔으며 같은 대학에서 대학원장·학술원장 등을 지냈다. ‘촛불 너머의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국가의 철학’ ‘시장의 철학’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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