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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외칼럼
[오색인문학] 한국판 '미스 마플'은 비명횡사 했다

■학교서 배우지 않은 문학이야기- 이해조 ‘쌍옥적’ (1908~1909)

박진영 성균관대 교수·국어국문학

소설 속 한국 최초 여탐정 과부 고씨

사라진 돈 가방 수사 의뢰 받았지만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조역으로 전락

남성 중심 추리 소설의 한계 드러내

이해조 ‘쌍옥적’ 1911년 초판/사진 제공=국립중앙박물관




남 죽이는 놈은 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든 서양이든. 그런데 왜 죽었을까, 누가 죽였을까, 어디로 도망갔을까, 어떻게 잡을까. 그런 궁금증을 이야기로 만들어 함께 읽으며 즐기게 된 것이 추리소설이다.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한가. 그 시체가 나만 아니라면.

누군가 죽은 뒤에야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죽은 사람보다 죽인 놈에게 더 관심을 가지는 자, 탐정. 애도는 잠깐이거나 생략, 피비린내 맡을수록 눈에 광채가 돌고 심장이 뛴다. 그런 멋진 직업을 가진 영웅이 꼭 남성이어야만 할까.

이해조 ‘쌍옥적’ 1918년 제4판/사진 제공=한국근대문학관


서울 하고도 종로 한복판에 젊은 과부댁이 살았더랬다. 성은 고씨요 나이는 서른도 채 차지 않았다. 미모가 빼어난 것은 아니지만 동네방네 소문이 자자하다. 누가 신발이나 옷이라도 도둑 맞으면 쪼르르 달려오곤 한다. 그녀가 며칠 설렁설렁 돌아다니다 보면 어김없이 범인을 잡아낸다. 그래서 별명이 여탐정이다. 이쯤 되면 경찰도 머리를 숙이고 들어올 수밖에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참말로 경찰이 공손하게 도와주십사 청했다. 때는 1895년 대한제국 시절,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 뒤끝이라 한창 어수선한 즈음이다. 기차에서 공금이 든 돈 가방을 잃어버렸단다. 단서도 있고 용의자도 있건만 도무지 못 잡겠다는 말씀이렷다. 그녀에게 육감이나 심증 따위는 필요 없다. 당장 서울역 앞에 술집을 차려서 떠도는 정보를 수집하고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큰소리치더니 과연 한 달 만에 해내고야 말았다.

만약 고씨 과부가 나이 들면 1930년대 쯤에는 미스 제인 마플처럼 뜨개질하는 수다쟁이 할머니로 곱게 늙었을 터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주인공도 젊은 시절에는 틀림없이 고씨 과부처럼 도둑을 잡았을 것이다.

신소설작가 이해조


이렇게 멋진 여탐정이 등장한 것은 초창기 작가 이해조 덕분이다. 이해조는 만 6년 동안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매일 신문에 소설을 연재했다. 몰락 양반부터 최하층의 노비와 기생까지, 학생이나 지식인부터 사기꾼에 이르기까지 온갖 인물들이 소설의 주인공이 됐다. 산적 소굴, 색주가, 학교, 극장, 도시 뒷골목, 항구 어디든 무대였다. 이해조 소설은 봉건 왕조가 멸망하고 외세에 흔들리던 1890년대 중반부터 끝내 식민지로 전락한 1910년대 초반에 이르는 격변의 동시대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탁월한 이야기꾼 이해조가 선보인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이 바로 ‘쌍옥적’이다. 1908년 처음 발표된 ‘쌍옥적’은 1918년까지 판을 거듭하며 꾸준히 사랑 받았다. 두 명의 사복형사와 여탐정이 활약하는 이야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추리로 사건의 비밀을 밝혀내는 이야기는 새롭고 신기한 상상의 세계였다. 더군다나 단정하고 명민한 여탐정의 출현이 어찌 매혹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한국 최초의 여탐정은 ‘쌍옥적’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아뿔싸, 바로 그날 밤 여탐정이 누군가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시체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추리는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일까. 아니다. 여탐정의 추리는 빈틈없고 틀림없었다. 문제는 역시 경찰이었다. 애당초 잘못된 단서와 엉뚱한 증거에 기댄 탓이다. 이제 가방 도난 사건은 피비린내 풍기는 연쇄살인 사건으로 번진다. 사건을 의뢰한 사복형사들은 오히려 여탐정 살해 혐의로 체포됐다. 역시 경찰 위에 범죄자가 있고, 추리소설의 묘미는 반전에 있게 마련이다.

이해조의 ‘쌍옥적’은 추리소설이 왜 새로운 시대를 대변하는지, 얼마나 세련된 취향의 이야기인지 잘 보여준다. 근대사회의 범죄는 본질적으로 ‘묻지 마’ 범죄다. 익명의 범죄자가 언제라도 불특정 다수를 위협할 수 있으며,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안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 사회를 위해 개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위해 사회가 존재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한 책임의 대리자가 바로 경찰과 탐정이며, 그들의 무기는 차디찬 이성과 날카로운 합리성이다.

이해조 번역 ‘누구의 죄’ 1913년 초판/사진 제공=아단문고


이해조 번역 ‘누구의 죄’ 1921년 재판 /사진 제공=근대서지학회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을 장식하고도 한창 나이에 비명횡사한 최초의 독신 여성 명탐정. 그녀는 남성 중심적인 추리소설에 바쳐진 최초의 희생양이기도 하다. ‘쌍옥적’이 큰 인기를 누리자 이해조는 ‘누구의 죄’ 라는 제목으로 세계 최초의 장편 추리소설을 번역했다. 르코크 탐정을 탄생시킨 에밀 가보리오의 ‘르루주 사건’이 원작이다. 르루주 과부가 시체로 발견됐다니 손에 땀을 쥐는 이야기를 기대하시라.

박진영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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