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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외칼럼
[오색인문학] 농촌·농민 사랑한 법학도, 번역가가 되다

■학교서 배우지 않은 문학이야기

-김성칠 번역 ‘대지’(1940) ? ‘초당’(1948)

박진영 성균관대 교수국어국문학

고보시절 동맹휴학 주도하다 검거

법조인 길 접고 역사학도로 변신

농촌 실상 담긴 펄벅의 '대지'에

식민지 조선의 혹독한 모습 투영

고난 이겨내는 검질긴 생명력 담아

왕조 멸망 이후 민족 고난사 그린

재미 작가 강용흘의 '초당'도 번역

김성칠




1935년 두 명의 스타가 탄생했다. 신문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 공모를 통해서다. 신춘문예는 지나갔고 신인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좋은 작품을 고대하며 최고액을 내걸었다. 다만 특별한 조건이 덧붙었다. 조선의 농촌을 다룬 것이어야 했다.

몇 년 동안 불타오른 ‘브나로드운동’이 절정에 달했다. ‘민중 속으로! 농민 속으로!’ 각계각층을 망라하며 전국적으로 펼쳐진 농촌계몽과 민족운동의 총결산. 장편소설 당선작은 바로 심훈의 ‘상록수’다. 농촌 주제 논문도 특별 공모했다. 당선자는 경성법학전문학교 학생 김성칠. 판검사나 변호사를 꿈꿔야 할 젊은 인재가 농촌 문제로 벌써 두 번째 당선된 것이었다.

배우이자 감독이기도 했던 심훈은 ‘상록수’를 영화화하려고 했으나 빛을 보지 못했다. 연재를 마치자마자 손수 각색하고 캐스팅까지 끝냈건만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심훈은 펄 벅의 ‘대지’를 막 번역하기 시작한 참이었다.

법학도 김성칠은 학교를 졸업한 뒤 조선금융조합연합회에 취직했다. 고등보통학교 시절 비밀결사에 가담해 대규모 동맹 휴학을 주도하다가 검거됐으니 어차피 식민지에서 법조인으로 성공하기는 글렀던 탓이다. 본인 말마따나 주판알 튀기는 일을 본업으로 삼으면서 김성칠은 펄 벅의 걸작을 완역해냈다. 얼마 뒤 김성칠은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해 늦깎이 역사학도로 변신했다.

김성칠 번역 대지 (1940) 1953년판


왜 펄 벅이요 ‘대지’였을까. 선교사 딸이자 농업학자의 부인 펄 벅은 엄연히 미국인이지만 중국에서 나고 자란 것이나 다름없다. 훗날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맺어서 박진주라는 이름으로 기억됐다. 중국 최하층 빈농 일가의 가족사를 그린 ‘대지’는 퓰리처상, 윌리엄 딘 하우얼스 메달, 노벨문학상까지 거머쥐면서 갈채를 받았다. 때마침 영화로 제작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렇다고 누구나 펄 벅에 환호한 것은 아니다. 평단과 지식인의 반응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펄 벅은 유럽 문단의 주류가 아닌 미국의 대중소설가였다. 아시아에서 성장한 작가가 아시아를 무대로 삼은 작품으로 정상에 오른 사실이 떨떠름했다. 한술 더 떠서 이혼한 여성 작가의 입으로 침묵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되살리려 애쓴 것도 몹시 불편했다.

중국조차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대지’에는 중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 중국인의 아름다운 민족정신과 품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펄 벅은 격동기 중국의 참상과 중국인의 고통을 숨김없이 드러냈으며 끔찍한 삶과 운명에 시달리는 아시아 여성의 편에 섰다. 오죽하면 할리우드 최대 영화사가 ‘대지’를 촬영할 때 중국 정부가 집요하게 훼방을 놓았을까.

농촌의 실상과 농민의 생활을 파고든 김성칠. 청년 지식인 김성칠이 펄 벅의 ‘대지’에서 발견한 것은 식민지 조선의 혹독한 현실이요 민중의 생생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광란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중국 대륙을 침략하고 전 세계를 전쟁터로 만들기 시작했다. 조선 농민과 아시아 민중은 땅을 닮은 검질긴 생명력으로 무시무시한 광풍을 이겨낼 수 있을까. 짓밟힌 자들은 ‘대지’의 주인공처럼 면면히 핏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김성칠 번역 조선농촌담 (1942)


농촌과 농민에 대한 김성칠의 애정은 일제 말기에 번역한 ‘조선농촌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해방 직후에는 역사학자이자 국학자요 번역가로 활약했다. 서울대 사학과 교수로 강단에 선 김성칠은 ‘조선 역사’와 ‘동양 역사’를 저술했으며 ‘용비어천가’와 ‘열하일기’를 번역했다. 그리고 강용흘의 영문 소설 ‘초당’을 우리말로 옮겼다.

강용흘 초당 (1931)


김성칠 번역 초당 (1948)


소년 시대에 식민지를 떠난 강용흘은 최초의 한국계 미국 작가다. ‘초당’은 1931년 뉴욕에서 펄 벅의 ‘대지’와 동시에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강용흘의 자전적 소설 ‘초당’은 왕조 멸망, 강제 병합, 3·1운동으로 이어진 민족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성칠이 서둘러 ‘초당’을 번역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성칠이 번역한 펄 벅의 ‘대지’는 1940년 처음 출간된 후 1980년대 초까지 판을 거듭하며 널리 읽혔다. 그런데 강용흘의 ‘초당’은 1948년 상권만 출간된 채 번역이 중단됐다. 한국전쟁 와중인 1951년 부산으로 피난해 있던 김성칠이 제사를 지내러 고향에 들렀다가 괴한의 총탄에 피살됐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농촌 전문가이자 번역가, 해방된 나라의 젊은 역사학자요 국학자를 누가 왜 저격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김성칠이 한국전쟁을 겪으며 남긴 일기는 훗날 ‘역사 앞에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김성칠의 삶과 번역에는 식민 지배, 분단, 내전으로 얼룩진 민족사의 비극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진영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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