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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스포츠문화
살아서 나무심고 죽어서도 나무곁에 누운 사람

■민병갈, 나무 심은 사람

임준수 지음, 김영사 펴냄





지난 주말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에는 목련이 활짝 폈다. 목련만 700종 이상, 총 1만6,000여 종의 식물이 자생하는 이곳을 신의 손길과 자연의 섭리가 빚어낸 정원이라 생각하는 게 당연할 테지만 실제는 사람이 일일이 나무를 심어 조성한 곳이다. 주인공은 임산(林山) 민병갈(1921~2002). 미국 펜실베니아주 웨스트피츠턴에서 태어날 당시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칼 페리 밀러다. 1945년 미24군단 정보장교로 한국에 첫 발을 디딘 그는 한국에 귀화해 한국에서 숨을 거둔 첫 번째 서양인이다.

밀러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언론인 출신 저술가 임준수 씨가 밀러의 전기를 집필해 출간했다. 밀러가 미국의 가족에게 쓴 1,000편 이상의 편지, 저자가 12년간 교류하며 직접 들은 이야기,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밀러의 삶을 되살렸다.



저자는 민병갈에 대해 “증권가의 큰손, 음악과 술을 즐기는 풍류객, 한국인보다 한국문화를 사랑한 선비,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요함이 번뜩이는 수집광이자 공붓벌레”라고 묘사하며 “천리포수목원이 30년도 안 돼 국제 원예계가 인정하는 나무의 견본장으로 떠오른 것은 설립자 민병갈 원장의 끈질긴 집념과 초인적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그가 처음 안 한국은 지도상의 점처럼 작은 땅, 일본의 식민지였다. 막상 도착한 한국 땅은 신선한 기운이 감돌았고, 사람들은 남루했어도 친근했다. 밀러와 첫소리가 같은 민씨 성은 한국은행에 근무하며 의형제로 발전한 민병도 전 한국은행 총재의 이름에서 빌려왔고 칼의 발음을 따 민병갈로 한국 이름을 지었다. 나무 공부에 열중하던 중 “딸의 결혼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한 농부의 간청으로 천리포의 척박한 땅 3,000평을 산 것이 수목원의 시작이 됐다. 민병갈이 완도에서 직접 발견한 토종 ‘완도호랑가시나무’의 학명에는 그의 본래 성인 ‘밀러’가 붙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수목원을 18만평 규모로 키웠고, 죽어서도 수목장으로 나무 곁에 누웠다. 길게 내다본 혜안 덕에 천리포수목원은 생태 위기 속 한반도의 왼쪽 허파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1만9,800원.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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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부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친절한 금자씨는 예쁜 게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대미술은 날 세운 풍자와 노골적인 패러디가 난무합니다. 위작 논란도 있습니다. 블랙리스트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착한미술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으로 쏘다니며 팔자 좋은 기자. 미술, 문화재 전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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