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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층 휘감은 거대한 커튼월...반백년 '종로 터줏대감'의 존재감 [건축과 도시-삼일빌딩]
리모델링 후의 삼일빌딩 전면부. 삼일빌딩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동색 메탈 커튼월이 부식되고 변색된 탓에 이를 전면 교체했다. 하지만 기존 형태와 색상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진 제공=윤준환 사진작가




광화문 청계광장에서부터 청계천변을 따라 15분여를 걷다 보면 ‘삼일빌딩’이 왼쪽 시야에 걸린다. 길쭉하게 솟은 이 흑색 빌딩은 투명한 유리 빌딩 숲속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뿜어낸다. 반백 년 넘게 종로구 관철동을 지켜온 이 빌딩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층 빌딩’ ‘근대화의 상징’ ‘거장 김중업 선생의 작품’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뒤따르지만 오랜 세월 노후화가 진행되면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왔다.

그런 삼일빌딩이 지난 2019년 SK디앤디와 벤탈그린오크에 매입된 후 정림건축과 원오원아키텍스의 손을 거쳐 리모델링됐다. ‘원형을 지키면서 지나온 시간만큼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 건축물’로 재구성하겠다는 치열한 고민을 거친 삼일빌딩이 50년 만에 익숙하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준공된 지 50여 년 만에 리모델링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종로구 관철동의 삼일빌딩. / 사진 제공=윤준환 사진작가


<길쭉한 동색 메탈 커튼월…순 우리 기술로 구현해내>

이번 리모델링 프로젝트의 핵심은 삼일빌딩의 ‘역사적 맥락’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었다. 삼일빌딩의 가장 두드러지는 외관적 특징은 ‘커튼월(curtain wall·건물 외벽을 커튼처럼 둘러싸는 얇은 칸막이 벽)’이다. 세로로 길쭉한 동색 메탈 커튼월로 완성된 경쾌한 외관은 삼일빌딩의 정체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이번 프로젝트에서 정림건축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도 바로 이 커튼월이다. 메탈 커튼월이 부식되고 틀어져 불가피하게 커튼월을 전면 교체해야 했지만 이전 형태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커튼월의 유리도 기존의 것과 가장 유사한 색상으로 고르고 골라 준공 당시의 동색 외관을 구현해냈다.

그렇다고 완전히 동일한 커튼월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당시 기술적 한계 탓에 메탈 커튼월에 일본 기업인 ‘신일본제철’의 코르텐 스틸이 사용됐고, 코팅재도 ‘니혼파커라이징'의 웨더코팅이 적용됐다. 하지만 이번 리모델링에는 이들 재료와 기술을 모두 국산으로 대체했다. 3·1 독립운동의 정신이 깃든 ‘삼일빌딩'을 50여 년 만에 우리 기술과 재료로 재탄생시킨 셈이다.



현대적인 느낌의 나선형 계단 옆에 준공 당시의 콘크리트 팔각기둥과 보를 그대로 노출시켜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연출했다. /사진제공=윤준환 사진직가


<준공 당시 콘크리트 기둥 그대로 노출…한 공간에 공존하는 과거와 현재>

삼일빌딩의 역사적 맥락을 보존하려는 노력은 외관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원오원아키텍스는 로비에 과거와 현재의 요소를 함께 배치함으로써 1970년과 2021년이라는 두 시대의 공존을 꾀했다. 입구를 통해 건물로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지하 1층과 지상 2층까지 이어지는 매끈한 백색의 나선형 계단으로 시선이 모아진다. 그 주변에 준공 당시의 콘크리트 팔각 기둥과 보를 거칠거칠한 상태 그대로 드러냈다. 또 1층 부출입구에 기존 커튼월을 활용해 디자인한 벽체를 배치해 삼일빌딩의 상징인 커튼월을 눈높이에서 볼 수 있게 했다.



이번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삼일빌딩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동시에 현대 오피스로서의 기능과 서울의 중심인 종로에 독특한 장소성을 갖춘 새로운 건물을 재생시키기 위해 추진됐다. 빌딩이 준공된 1970년과 현재의 가장 큰 차이는 청계고가도로의 유무다. 오랜 기간 가려져 있었던 빌딩의 저층부가 청계고가도로가 철거되면서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런 만큼 리모델링 프로젝트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빌딩 저층부의 접근성을 개선해 공공성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원오원아키텍스는 우선 컴컴했던 지하층에 성큰(sunken)을 설계해 채광을 극대화했다. 죽은 공간이나 다름없던 이 공간에는 현재 카페가 들어와 공공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리모델링을 통해 덕트와 배관 설비를 가능한 한 한곳에 몰아넣어 개방감을 확보했다. /사진 제공-윤준환 사진작가


<고질적 문제였던 ‘낮은 층고’ 극복…현대 오피스 빌딩 기능 갖춰>

50년 전에 지어진 삼일빌딩에 ‘오피스 빌딩’이라는 본래의 기능을 부여하기 위해 가장 먼저 개선해야 했던 점이 바로 ‘층고’였다. 삼일빌딩은 오피스 빌딩 치고는 층고가 매우 낮았다. 현대 오피스 빌딩의 층고는 보통 3~4m 정도지만 삼일빌딩의 바닥과 천장 사이는 2.3m에 불과했다. 성인 남성이 손을 뻗으면 천장에 손이 닿을 만큼 바닥과 천장 사이가 좁았던 것이다. 삼일빌딩의 층고가 이처럼 낮게 설계된 이유는 ‘31층’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고 전해진다. 당시 기술력으로 올릴 수 있는 건물 높이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이런 가운데 31개 층을 확보하려다 보니 층고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기존 삼일빌딩도 층고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보에 구멍을 뚫고, 그 사이로 덕트를 관통시키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높은 천장고를 만들어내기 위해 정림건축은 노출 천장으로 개방감을 최대화했고, 덕트와 배관을 가능한 한 한곳에 몰아넣었다. 이 같은 작업으로 현재의 삼일빌딩은 기존보다 확 트인 공간감을 갖추게 됐다. 또 공조실 등 설비 공간을 보다 집약적으로 배치해 오피스 면적과 화장실 면적을 확보했다. 내진 설계도 강화했다. 삼일빌딩이 지어질 당시에는 관련 규정이 전무했기 때문에 건물에 내진 설계가 적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에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건물의 모든 기둥에 탄소섬유로 내진 보강을 완료했다.

리모델링으로 다시 태어난 삼일빌딩에는 현재 많은 기업이 들어와 둥지를 틀고 있다. SK네트웍스와 서울관광재단, 북카페 카페 콤마가 지난해 준공 전 임대차계약을 마치고 입주했다.

/양지윤 기자 y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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