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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외칼럼
[오색인문학] 아내냐 그림이냐 갈림길 선 전직 PD

■한국의 컬렉터- 시인 최부식

김종근 미술 평론가

문화다큐 만들면서 본능에 불붙고

30만원 '소녀상'으로 컬렉터 입문

4,000만원 호가 강요배의 '월아사'

할부로 통사정 구입하는 열정까지

모으기만 하며 행복해하는 그에게

답답함 느낀 부인이 한마디 했단다

안 팔거면 컨테이너 들고 나가라고

최부식 시인




최부식, 현재 한편에 5만~6만 원 정도를 받는 시집 ‘봄비가 무겁다’의 시인이다. 취미는 그림과 시집 컬렉트. 그러나 전직은 포항 MBC 편성국장 PD였다. 계명대 영어영문과를 졸업하고 문학청년의 길로 들어선 그는 지난 1984년 방송국에 입사해서 다큐멘터리와 프로그램 제작 등 PD 생활을 하며 많은 미술계 사람을 만났다.

세 살 적 버릇이 여든을 간다고 했던가. 그는 직급이 올라가고 월급이 늘어날수록 수집의 범위도, 배짱도, 그림 숫자도 늘렸다. ‘겸재 정선, 청하의 가을을 보다’ ‘경술국치 백년, 석굴암 100년의 진실’ 등 지역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찾는 다큐를 제작하면서 그 본능에 불이 붙었다.

여섯 살 무렵 이미 마루 위에 걸린 밀레의 ‘만종’ 달력 그림에 푹 빠져 있던 그에게 유별나게 그림을 잘 그렸던 누님의 재능은 그림 중독에 한몫을 더했다.

최부식 시인의 컬렉션들


1984년 전세금 600만 원짜리 집에 살면서 200만 원이나 되는 청전의 동양화 그림 한 점을 못 사 오랫동안 속앓이를 하던 그는 인사동 기금 마련전에서 30만여 원에 김운성·김서경 부부 작가의 위안부 소녀상 작품을 사면서 컬렉터의 길에 들어섰다.

1988년 그는 도굴꾼들을 다룬 다큐로 받은 상금으로 해외 여행길에 올랐다. 런던·파리·스위스를 여행하다 런던의 음반 가게를 뒤지다 우연히 음악가 윤이상의 사인이 들어 있는 LP 음반을 보고 흥분했고 헌책방에서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 저자 사인본과 드뷔시의 ‘녹턴’ 악보 초판본을 손에 넣으면서 컬렉션 중독에 빠져들었다.

문청이었던 그는 서울, 대구, 부산으로 출장을 갈 때마다 헌책방을 뒤졌고 거기에서 시집 몇 백만 원씩 하는 김영랑·조지훈·이육사·박목월 등의 초판본 시집을 구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당시 그의 월급은 겨우 36만 원 정도. 그것으로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 하는 유명 화가의 그림을 산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욕망과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 꿈을 이루게 한 일이 일어났다. 제주도에서 작업하는 강요배의 2010년도 작품 ‘월아사’를 서울의 화랑에서 본 것이다. 이 그림은 작가가 둔황의 월아천에서 5㎞ 떨어진 명사산의 작은 호수에 비친 물속에 달이 뜬 것 같은 것을 그린 풍경화였다.

그는 4,000만여 원이나 하는 비싼 그림을 어찌할 수가 없어 사장에게 할부로 해달라고 통사정해 손에 넣은 후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고 했다.

이것은 그의 그림 할부 인생의 출발에 불과했다. 아트페어를 보러 갔다가 마지막 날 작품 싸는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 할부로 구매하는가 하면, 한 화랑에서 작품을 들고 나오는 사람을 발견하고 쫓아가 흥정 끝에 그림을 샀는데 그것이 변시지 화백의 작품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그칠 줄 몰랐다. 그는 맘에 드는 작가를 찾아 포항에서 광주까지 가서 작가의 작품을 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도 할부로 샀는지는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가격이 저렴한 판화 작품에 눈을 돌렸다.

그의 작품 구매 패턴과 영역은 세계 곳곳에 걸쳐 있었다. 그가 소장한 에곤 실레 작품들의 면면이 그것을 말해준다.

구사마 야요이의 판화(50x65cm), 실크스크린, 1999년


그의 열정과 애정은 전문가가 봐도 놀라운 수준이다. 게다가 대부분 투자성과 예술성이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한국의 원로 작가로 손꼽히는 권옥연·김구림·김흥수·남관·이우환·장두건·최영림 등의 작품이 그렇다. 해외 작가로는 앙리 마티스, 앤디 워홀, 구사마 야요이, 무라카미 다카시, 조르주 루오, 마리 로랑생, 피에르 카시뇰, 루이 이까로, 심지어 파블로 피카소까지 포함한다. 가히 포항 미니 미술관급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그림을 수집하다 보니 그도 전형적인 컬렉터의 모습을 보인다. 집으로 가져올 수 없어 사무실에 두거나 친구 집에 맡겨둔 것이 수십여 점. 몇 백만 원짜리를 몇 십만 원에 샀다고 하고, 몇 십만 원짜리 판화는 친구에게 공짜로 받았다고 부인에게 둘러대기도 했다.

그는 2016년 포항시립중앙아트홀에서 ‘최부식 소장전-그림과 시인’ 컬렉션전을 열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방송국에서 은퇴한 그가 이제 35년 가까이 애지중지하던 그의 소장품을 공개한 것이다.

이달에는 경주에서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 ‘바흐’에서, 오는 6월에는 황리단길의 100년 된 ‘정미소’에서 그가 감춰둔 비장품 40여 점을 특별 전시한다. 지역 주민과 함께 나누기 위한 행사다.

요즘 그에게는 고민이 생겼다. 컬렉터인가, 남편인가 하는 것이다. 부인이 자꾸 선물을 그림 말고 현금을 달라는데 그림을 팔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최 시인이 문자를 보내왔다. “또 그러면 같이 못산다, 남들 다 가지고 다니는 명품 백 하나 안 사주면서…이제는 컨테이너 들고 나가라고 한다”고.

김종근 미술평론가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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