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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의 그림] 여의도 파크원, 파란벽 위 휘황찬란한 꽃무리···도심속 천국이 열렸네

'설악산의 화가' 김종학의 '설악여름 일월도'

폭 7m 넘는 대작으로 자연의 생명력 넘쳐

에스컬레이터 벽엔 박선영 '천상의 꽃' 눈길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 청량감 선사

문범의 '시크릿 가든'은 신비로운 기운 가득

여의도 파크원 오피스동 타워1 로비에 걸린 김종학의 '설악여름 일월도'




요즘 서울 도심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을 꼽는다면 여의도 파크원(Parc1)이 단연 첫손에 든다. 회색 도시를 날렵하게 가르는 선명한 빨간색 철골 구조가 인근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도 눈길을 끄는 건물이다. 건축가는 파리의 퐁피두센터와 런던 그리니치 밀레니엄돔, 히스로공항 제5터미널 등으로 유명한 리처드 로저스. 탁월한 업적으로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고 지난 2007년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거머쥔 그는 최신 공학 기술을 바탕으로 건축의 기능과 시공법을 실험하는 ‘하이테크 운동’을 이끈 주인공이다. 종종 ‘아직도 공사 중이냐’는 핀잔을 듣기도 하는 파크원의 붉은 골조에 실은 로저스 건축의 핵심이 담겨 있다. 이것들이 지지대로서 바깥 기둥의 역할을 하고 있어 건물 내부에는 기둥이 없다. 로저스는 렌초 피아노와 함께 작업한 퐁피두센터에서 불필요한 장식은 걷어내고 공사 과정과 내부 시설이 유리 벽 너머로 자연스레 보이게 했다. 그런 다음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빨간색, 전기와 난방은 노란색, 배수관은 녹색, 통풍구는 파란색 등 기능별로 파이프 색을 선명하게 칠했다. 파크원에서도 외부 기둥의 골격을 드러내기로 결심했으나 색을 정하지 못하던 로저스는 한국의 전통 건축에서 매력적으로 느낀 단청색, 특히 붉은색이 “미래지향적이면서 강렬한 이미지”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조선 궁궐 건축에서 볼 수 있는 적자(赤紫)색 굵은 기둥을 떠올린다면 건축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듯하다.

밖에서 본 외부 골조의 붉은색을 기억하며 파크원 안으로 들어가보자. 이 대규모 건축 단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백화점인 더현대서울이 입점한 리테일동, 한국에 처음 상륙한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이 자리 잡은 호텔동, 오피스동인 타워1·2로 구성돼 있다. 이 중 로비의 그림을 찾아나선 곳은 오피스동 타워1이다.

여의도 파크원 오피스동 타워1 로비에 걸린 김종학의 '설악여름 일월도'


푸르른 하늘 한가운데 휘영청 뜬 꽃인가, 시퍼런 심해에서 길어 올린 꽃들인가. 세상 모든 색 꽃을 다 담은 그림이 파란 벽에 두둥실 걸려 있으니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건축가 로저스가 단청의 적색을 외부 기둥에 썼다면 이곳 로비의 그림들은 단청 청색의 벽을 배경으로 삼았다.

백화난만(百花爛漫)한 꽃을 그린 이는 ‘설악산의 화가’로 불렸고 최근에는 해운대에서 작업하고 있는 김종학(84) 화백이다. 높다랗게 걸린 그림의 크기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폭이 7m 77㎝이고 높이가 2m 37㎝인, 벽화라 불러도 됨 직한 대작 ‘설악여름 일월도’다. 설악의 풍경 중 여름의 낮과 밤을 그린 것이다. 그림 오른쪽에 뜨거운 붉은 태양이, 왼쪽 끝에 시리고 허연 보름달이 떠 있다. 해도 달도 저물지 않는 땅에 1년 내내 지지 않는 꽃들이 만발하니 천국 같은 풍경이다. 호박꽃·제비꽃·해바라기·맨드라미를 비롯해 온갖 이름 모를 야생화가 한데 피어 있고 나비·꿀벌과 물총새는 물론 제멋대로 집을 지은 거미까지 공존하는 낙원이다.

여의도 파크원의 오피스동 타워1 로비에 걸린 김종학의 '설악여름 일월도'


이 그림은 조선 왕실에서 왕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며 영원불멸의 소재를 그린 ‘일월오봉도’를 모티브로 했다. 김종학은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공부했고 한국화의 표현법과 화려한 색채미감을 접목해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자신만의 화풍을 이뤄냈다. 속도감 느껴지는 거친 붓놀림에서도 조화와 균형미가 탁월한 것 또한 특기다. 자유분방하게 피어난 꽃이 흥분감을 자아내다가도 파란 벽으로 시선이 닿으면 정신을 가다듬게 되니 보는 재미가 기막히다. 빌딩 숲에서 살아가는 현대 도시인에게 생동감과 활력을 선물하는 작품이다. 속으로 품은 자연의 생명력과 겉으로 드러난 공존의 아름다움이 있으니 ‘그냥 꽃그림’이 아니다. 1년 내내 지지 않는 꽃이니 세월무상 잊게 해줘 고맙기도 하다.

박선영 '천상의 꽃'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가니 꽃이 더 있다. 유리로 빚은 청초한 꽃 한 무더기가 정갈하다. 총천연색 꽃들과 대조를 이루는 흰 꽃이다. 박선영 작가의 ‘천상의 꽃’. 철제 캔버스 위에 도자처럼 느껴지는 유리 혼합 재료의 꽃을 한 송이 한 송이 심듯 설치했다. 흰 꽃밭 일부는 도토리 껍질 같은 색의 ‘다른 꽃’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타자(他者)를 끌어안은 품이 넉넉하다. 도심의 꽉 짜인 일상 속 우연히 만난 자연에서 느끼는 청량감이라 해도 될 법한 작품이다. “천상의 꽃으로 순수와 다복·평화를 표현하고자 했고, 현대인이 도시적 각박함에서 벗어나 휴식과 치유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진다.

박선영 '천상의 꽃'






이제 타워2 쪽으로 나가보자. 이곳 연결부는 백화점뿐 아니라 외부로도 이어지는 파크원의 중심부다. 여기에 한국 현대미술의 거물급 작가들의 그림이 자리 잡고 있다. 타워1 쪽은 문범, 타워2 쪽의 로비 벽면은 노상균 작품이다.

건물 안쪽에서 꽃으로 만났던 자연의 민낯이 이글거리는 붉은 기운 그 자체로 그림이 됐다. 문범의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이다. 푸른 벽에서 솟아오른 불길인가 싶다가, 안견의 ‘몽유도원도’ 같은 전통 산수화에서 봤음 직한 신비로운 절벽과 산세의 표현이 떠오르더니, 이리저리 나부끼는 꽃잎으로 내려앉는 듯하다. 문범은 1970년대 미니멀한 추상화가 화단을 주도하는 것에 비판 의식을 갖고 ‘사물드로잉’ 등 실험적 작품을 선보이다 1990년대 이후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 캔버스 틀이라는 질서 안에서 무질서한 속성을 품은 유기적 형상을 통해 회화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문범의 ‘시크릿 가든’


문범의 ‘시크릿 가든’


노상균의 ‘더블 엔드’(왼쪽)와 ‘별자리-처녀자리’


노상균의 ‘더블 엔드’(왼쪽)와 ‘별자리-처녀자리’


타워2 쪽의 진입로는 노상균의 작품으로 빛난다. 작은 시퀸을 하나하나 붙여 극도의 정교함과 완벽미를 추구한 작가의 핑크색 ‘더블 엔드(Double Ends)’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작품 표면을 잡아당겼다가 놓아버린 양 화면이 팽창하고 수축하며 숨 쉬는 것 같이 느껴진다. 원의 가운데가 시작인 동시에 끝이요, 동심원이 퍼져나간 끄트머리 또한 끝인 동시에 새로운 확장의 시작이다. 그 옆에 걸린 작품은 동일 작가의 ‘별자리’ 연작 중 ‘처녀자리’다. 거대한 별자리를 형상화한 것인데, 세포분열해나가는 한낱 미생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점에 작가가 던지는 질문이 도사리고 있다. 별에 인간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붙이는 별자리에 빗대 우주적 진리와 인간의 욕망을 철학적으로, 그러나 무척이나 아름답게 풀어놓은 작업이다. 파크원은 프랑스어로 ‘공원’을 뜻하는 그 이름처럼 도심 속에 독특한 공원처럼 자리 잡았고, 그 안의 작품들 또한 인간의 손이 빚었음에도 자연의 근원과 본질을 탐색하며 건물과 어우러지고 있었다. 공원 산책을 하듯 로비 그림을 감상해도 좋겠다.

/글·사진=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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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부 글·사진=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친절한 금자씨는 예쁜 게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대미술은 날 세운 풍자와 노골적인 패러디가 난무합니다. 위작 논란도 있습니다. 블랙리스트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착한미술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으로 쏘다니며 팔자 좋은 기자. 미술, 문화재 전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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