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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외칼럼
[오색인문학] 한 몸 된 두 나무, 도원경의 평화를 꿈꾸다

■나무로 읽는 역사이야기- 경북 상주시 무우정과 연리목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낙동강 경천대 옆에 터잡은 무우정

정면에 種다른 소나무·굴피 연리목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 운운하지만

나무 입장선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

곧은 소나무와 달리 몸 굽은 굴피

평화롭게 공존위한 배려심 느껴져





정자는 조선 성리학자의 이상 세계다. 정자의 현판은 성리학자의 이상을 드러낸 상징이다. 경북 상주시 사벌국면에 위치한 무우정(舞雩亭)은 가장 완벽한 성리학자의 이상 정자다. 이유 중 하나는 정자의 이름이고, 또 다른 이유는 정자를 세운 주인공이다.

무우정의 뜻은 ‘논어 선진(先進)’에서 유래한다. 즉 공자가 제자들에게 각각 자신의 꿈을 묻자 증점(曾點), 즉 증석(曾晳)이 “늦은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벗 대여섯 명과 아이들 예닐곱 명을 데리고 기수에 가서 목욕을 하고 기우제 드리는 무우에서 바람을 쏘인 뒤에 노래하며 돌아오겠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고 했다. 공자는 증석의 얘기에 감동해서 크게 칭찬했다. 무우정은 증석의 얘기 중 ‘무우’에서 빌린 것이다. 무우정을 지은 채득기(蔡得沂·1605~1646)의 이름 중 ‘기’가 기수의 ‘기’이고 그의 호인 우담(雩潭)의 ‘우’는 무우의 ‘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우정은 채득기의 이상 세계를 구현한 곳이다. 증석이 언급한 구절은 무우정의 이름은 물론 경북 청도군 자계서원과 경북 영주시 순흥향교의 영귀루(詠歸樓) 및 경남 함양 남계서원의 풍영루(風詠樓) 이름에도 영향을 줬다. 무우정은 낙동강의 중심 경천대(擎天臺) 옆에 자리 잡고 있다. 경천대도 채득기가 이곳 경치에 반해서 붙인 이름이다. 낙동강과 마주한 경천대와 무우정은 채득기가 꿈꾼 현장이지만 모든 성리학자는 물론 현대인들도 바라는 곳이다. 무우정의 정면은 낙동강이 아니라 정자 앞의 숲이다. 그래서 무우정은 낙동강이 중심이 아니라 숲이 핵심이다. 정자의 정면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한 몸을 이룬 이른바 ‘연리목’이 살고 있다.

무우정과 경천대




경천대는 임진왜란 때 육지의 이순신으로 불렸던 정기룡 장군이 무예를 닦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경천대는 높지 않은 바위지만 하늘처럼 받들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경천대에 올라 무우정과 연리목, 그리고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 물을 바라보면 증석의 뜻을 품은 채득기의 삶을 느낄 수 있다. 경천대에서 바라본 무우정은 팔작지붕이어서 아주 날렵하다. 정자의 규모가 크기 때문인지 정자 내부에 네모난 기둥을 따로 세웠다. 게다가 팔작지붕 정자에 흔히 사용하는 부연(附椽·덧얹은 서까래)도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정자는 공공건물이기 때문에 둥근 기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둥근 기둥과 네모 기둥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과 음양 사상 및 신분을 담고 있다. 경천대를 내려오면서 바위틈에 살고 있는 옻나뭇과의 붉나무, 볏과의 해죽 등을 만났다. 특히 바위틈에 살다 돌아가신 이름 모를 나무의 그루터기를 보는 순간, 한참 동안 고개를 숙여 명복을 빌었다. 나무가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지만 생명체의 죽음 앞에 경건한 자세를 갖추는 것은 산 자의 가장 중요한 도리다.

소나무와 굴피나무 연리목


경천대에서 내려와 연리목을 만나러 갔다. 경천대에서 연리목을 보면 한 그루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두 나무가 살아온 삶을 만날 수 있다. 연리목이 결코 드문 것은 아니지만 무우정 앞의 연리목은 소나뭇과의 소나무와 가래나뭇과의 굴피나무가 한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좀 특별하다. 굴피나무와 소나무의 연리목은 전국에서도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상주시에서는 두 나무의 모습을 ‘진정한 사랑’이라 해석했지만 나무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참 고통스러운 모습이다. 두 그루의 나무 중 굴피나무의 줄기가 소나무의 줄기보다 굵다. 두 나무는 뿌리 부분부터 한 몸을 이루다가 30㎝ 정도에서 몸이 분리돼 각자의 모습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굴피나무의 줄기는 한쪽으로 굽은 반면 소나무는 곧장 위로 뻗었다. 이 같은 모습은 어느 순간 두 나무가 한 몸을 이뤄 살다가 굴피나무가 방향을 바꿔 떨어지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굴피나무가 몸을 기울여 방향을 튼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로 평화롭게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굴피나무는 ‘사이’를 좋게 만드는 것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존재다.

연리목을 차분하게 감상하기 위해 다시 무우정에 앉아서 낙동강 물을 바라보니 무심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듯해서 무척 행복했다. 그런데 다시 문득 건너편 벼 논을 바라보니 불현듯 농사짓던 시절이 떠올라 막막한 심정으로 돌아갔다. 뒤돌아앉아 연리목을 바라보다가 문득 무우정 오기 전에 잠시 들렀던 쾌재정(快哉亭)의 주인공 채수(蔡壽·1449~1515)를 생각했다. 채수는 바로 채득기의 증조할아버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 ‘설공찬전(薛公瓚傳)’의 작가이다. 산자락에 자리 잡은 쾌재정과 낙동강에 위치한 무우정은 성리학자의 공부 목적을 체험할 수 있는 아주 멋진 문화 공간이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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