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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외칼럼
[오색인문학] 그는 1,000마리 해태 식구와 함께 산다

■한국의 컬렉터- 작가 황진

김종근 미술평론가

조각 전공하고 사진사로 유명해져

해태가 사는집 주제 수차례 사진전

도발적 수집하다 1,000점도 훌쩍

강화에 작은집 10여채 나란히 구입

실제로 해태가 살 집·정원으로 꾸며

체험하는 추억의 박물관 만들 계획

해태들과 함께 하고 있는 황진 조각가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곳은 8년 전 청계천 황학동 벼룩시장의 골동품 가게를 들락거리면서였다. 늘 허름한 일꾼 차림으로 온 그가 도자기나 찻잔, 그리고 그림과 돌 조각들을 사면서 한 달에 두세 번 골동품 가게에서 만났다. 우리는 골동품 가게 사장과 소머리 국밥을 나누면서 친해졌다.

그의 이름은 황진, 직업은 조각가였다. 1963년생으로 강릉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1994년 뉴욕에서 조각을 전공했으며 1996년에는 카파(Kapa) 사진전문학원을 수료한 재주 많은 조각가다. 이미 10여 차례 이상 사진 개인전을 연 프로 작가이기도 하다.

조각과 사진을 공부한 그가 진지하게 전공 선택을 고민했을 때였다. 어머니가 유명한 작명가에게 물으니 사진을 전공하면 훨씬 더 성공하고 출세한다 했단다. 그래서 사진사가 되기로 작정했다. 그가 조각을 전공했음에도 인사동 쌈지길 상가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찰칵’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진사가 된 이유였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2004년 ‘쌈지길’ 상가 반지하 공간에 ‘황진사진관’을 여는 것이었다.

이곳은 오래 전부터 인물을 잘 찍는 ‘신기한 기념 사진관’으로도 소문이 났다. 계단 중간 2평 남짓한 쪽방에 있던 이 사진관은 한국의 전통 고가구, 티베트, 중국, 옛 골동과 석물들로 이미 그때도 꽉 차 있었다. 특히 구석에는 애장품인 적지 않은 해태 석상과 친구 화가인 이재삼 씨의 대형 초상화, 그리고 원로 작가 조성묵·김을 씨의 사진, 방송사 무명 탤런트, 가수 장사익 씨,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 등의 기념 사진들이 있었다.

1993년 뉴욕 유학 시절 백남준의 퍼포먼스를 우연히 찍은 사진처럼 말이다.

황진 작가가 인천광역시 강화에 설립한 해태박물관의 해태들.


황진 조각가가 인천광역시 강화에 설립한 '해태박물관'의 해태들.


작명가의 예언이 맞았는지, 그는 10여 차례 사진전을 열었는데 묘하게도 그 주제가 모두 ‘해태가 사는 집’이었다.

그는 이때부터 해태를 도발적으로 사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0점, 100점, 그러다 이제는 1,000점이 넘었다. 중국에 가서 직접 사기도 했고 국내 골동품상에서 모으기도 했다.

그는 “전공이 조각이라 돌이 유난히 들어왔고 해태 조각이 더욱 그랬다. 거의 해태 위주로 모으면서 받침대·물확 등 물건이 도착해 박스를 풀 때 먼저 고르는 부지런함으로 20여 년 이상을 발품을 팔아 모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1,000여 해태 식구들을 모두 강화 하점면 신봉리로 이주시키기로 했다. 길 옆 작은 집 10여 채를 나란히 구입해 해태가 살 집의 정원과 공간도 거의 다 마무리했다.

하고많은 장소 중 왜 강화냐고 물었을 때, 그는 강화에서 20년 가까이 살며 갯벌의 소중함을 가르친 강화도 시인 함민복의 시집 ‘말랑말랑한 힘’ 때문이라고 했다.

해태를 고를 때도 나름 기준을 정했다. 비슷하고 틀에 박힌 것보다는 기념비적으로 만든 조형물, 그러니까 하나만 있는 것, 작가의 기질이 들어 있는 자연스러운 조형물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의 해태상들은 다양하고 표정이 풍부하다.

밝은 표정의 해태를 특히 좋아한 그는 “작품에는 희로애락이 다 들어 있는데 보면 마음이 밝아지는 것으로 골랐다. 조각 작품은 작가의 역량에 따라서 만들어지는데 작가는 다 표현할 수 있어야 진짜 조각가”라며 “단순하면서도 유머와 재치가 있는 해태를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몇백 호가 넘는 크고 작은 그림들이 벽에 여전히 즐비하지만 그는 아직 ‘해태’ 컬렉션에 목말라 한다. 그것도 ‘지붕 없는 박물관’인 강화섬에 예쁘게 교감하는 박물관을 위해 일꾼처럼 일하며 꿈꾼다.

원래 해태는 중국식 발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해치로 부른다. 해태는 목에 찬 방울로 사람들에게 위험 상황을 알려주고, 사람들은 기르던 짐승이 위험할 때도 방울 소리로 보호해준다고 믿었기에 건축과 대문 앞에 두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컬렉션을 하면서 진짜 좋은 작품들은 곁에 두면 보인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해태 그려보기 체험 공간도, 나무와 잔디를 심고 곳곳에 쉼터를 만들어 가족들이 함께하는 시간과 추억의 박물관도 만들어볼 심산이다.

그는 그 이유를 아주 교양 있고 고상하게 선언했다. “모든 예술은 인간을 위로해야 하고, 위로 받은 인간은 봉사를 해야 하며, 예술을 위해 기부를 해야 하고, 이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서로 어우러져 돌아가야 품격 있는 박물관이 됩니다.”

강화 곳곳에 기부 문화가 스며들면 좋겠다는 그가 1,000여 점의 해태만으로 ‘해태박물관’을 만들며 카페 ‘1318’을 차린 이유이다.

아직 그의 꿈은 완성되지 않았다. 창후리 바닷가 5,000여 점의 작은 도자기와 항아리·호들이 수장고에서 기다리고 있다. 200여 점의 그림들과 함께.

김종근 미술평론가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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