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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업
“고객 명단에 재고·증설계획 내놔라”···美 정부 압박에 반도체 업계 당혹

백악관 반도체회의 후폭풍

11월 8일까지 정보 제출 요구

회의 안 간 SK하이닉스도 불똥

자율이라며 부실 땐 강제 조치 검토


미국 정부가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의 원인을 파악한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TSMC·인텔 등 반도체 제조사에 주요 고객 명단과 재고 현황, 증산 계획 같은 영업 기밀이 포함된 정보 제출을 요구했다. 경영 정보가 노출될 경우 영업에 치명상이 되는 만큼 국내 반도체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미 상무부 기술평가국은 지난 24일(현지 시간) 게재한 관보를 통해 국내외 반도체 제조사를 비롯한 중간·최종 사용자 등 공급망 전반의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전날 백악관이 소집한 반도체 대책회의의 후속 조치로 마감은 45일 후인 오는 11월 8일이다. 특히 설문 대상이 백악관 영상회의에 참석한 기업만이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기업 전부로 확대되며 삼성전자뿐 아니라 SK하이닉스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14개 항목의 설문은 반도체 기업의 주요 정부를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영업 성패와 직결되는 기밀 사항도 대거 포함됐다. 매출·고객과 관련해서는 각 기업의 상위 3대 고객 명단과 예상 매출, 제품별 매출 비중, 올해를 포함한 3년치 매출액을 적도록 했다. 지금 같은 반도체 수급난이 생겼을 때 제조사가 어떤 기준으로 물량을 고객에 배정하는지, 재고는 얼마나 있는지 같은 민감한 사항도 함께 물었다. 생산 관련 질문에는 생산 주기(리드타임)와 생산 시설의 세부 사항 등이 담겼다.

미 상무부는 이번 조사를 기업들의 자율에 맡긴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 제출 자료가 부실할 경우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동원해 강제로 확인하겠다고 경고한 만큼 업체로서는 정보 공개 수위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시 사항도 아닌 내용을 모두 공개하라는 것은 지나치다”고 토로했다.

상무부는 기업 기밀을 외부에 공유하지 않는다고 보장했다. 그러나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미국이 예상을 뛰어넘는 정보공개 조치를 단행한 만큼 국내 반도체 기업으로서는 미국 내 경쟁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미국의 이번 정보공개 요구를 접한 기업들은 몹시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애초 이번 조치의 시발점은 미국 내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이었다. 삼성전자의 경우 차량용 반도체 비중이 미미하고 SK하이닉스는 매출 대부분이 메모리 반도체에서 발생한다. D램이나 낸드 같은 메모리 반도체는 가격 하락이 예상될 만큼 공급 우위다.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과 종류도, 상황도 아예 다르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미국이 자국 산업의 비상 상황을 핑계 삼아 모든 반도체 업체의 정보를 요구한 것은 예상하기도 어렵고 이해할 수도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정보공개 사항의 면면도 문제다. 국내 업체들은 반도체를 최종 수요처에 제공하는 영업상 ‘을’에 속한다. 제조사 입장에서 구매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은 보안 규정에도 위배될 뿐 아니라 철저한 금기로 통한다. 구매자도 원치 않을 뿐 아니라 거래정보가 노출될 경우 추후 가격 협상이나 신규 고객 확보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업의 재고와 생산능력 등이 밝혀지면 반도체 가격도 널뛰기할 수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어느 정도의 가격 안정화를 위해 반도체 제조사는 재고를 정확히 밝히지 않는데 이게 알려지는 순간 시장이 요동치고 회사 경영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설문이 국내 업체에는 미국에 대한 추가 투자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오스틴·테일러를 주요 후보지로 점찍고 170억 달러 규모의 첨단 파운드리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실리콘밸리 연구개발(R&D)센터에 1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SK하이닉스는 국내 공장을 제외하면 중국 우시·충칭에만 메모리 생산 기지를 두고 있어 향후 조 바이든 정부가 미국 공장 신설을 거세게 요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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