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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 개발하려 마취도 없이 시술 받았죠"

[대한민국 명장을 찾아서] 김병철 서린메디케어 대표

회사서 국산화할 장비 안 사주자

병원 찾아 고통 참으며 성능 체험

모든 경우의 수 따진 완벽주의자

의료장비 시장 진입 장벽 피하려

'플라즈마' 연구·개발에 총력전

관련 특허 등 지재권만 30개 달해

김병철 서린메디케어 대표가 경기도 동탄 서린글로벌센터 사무실에서 올해 출시한 플라스마 미용 장비 ‘플라스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탄=송영규 선임기자




“해외 의료 장비를 국산화하려 하는데 회사에서 장비를 사주지 않더군요. 결국 해당 장비를 쓰는 병원을 찾아가 시술을 받았습니다. 통증이 어느 정도고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알기 위해서는 멀쩡한 정신으로 있어야 했습니다. 할 수 없이 마취 없이 시술을 받았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 기기를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괴짜.’ 올해 의료 장비 제조 분야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 명장 타이틀을 따낸 김병철(50) 서린메디케어 대표를 만났을 때 받은 인상이다.

김 대표는 사회 초년병 때 일을 배우겠다며 팀장을 밤 12시까지 붙잡고 매달렸다. 30대 초반 한창 신혼일 때는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가 생길 때마다 아내를 친정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것도 한 달씩이나. 첫 직장이던 택시 이동 무선 단말기 업체에서 일하던 동료 직원들이 외환위기로 모두 그만뒀을 때도 혼자 남아 금형 제작부터 회계,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1인 5역을 해냈다.

김 대표는 18일 경기도 동탄 서린글로벌센터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러한 경험이 기업을 단편이 아닌 전체로 볼 수 있게 했다”고 술회했다.

김 대표가 의료 장비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2008년 한 의료 기기 중소기업에 연구소장으로 근무하면서부터다. 그는 “당시 주말과 휴일도 없이 나와 일하면서 20여 개 제품을 개발했다”며 “그 결과 30억~40억 원에 불과했던 기업 매출이 200억 원까지 뛰었다”고 말했다.

41세 때 1인 기업 투케이코리아를 세웠다. 창업의 길로 들어선 것은 엔지니어가 대우받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 “외국산 제품을 국산화할 때 원리에 어긋나는 제품을 많이 보면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회사에서는 그대로 베끼기만 하라고 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업의 과정은 험난했다. 개발부터 생산까지 모두 혼자 했다. 한여름에 에어컨도 없는 미분양 아파트에서 개발하다 땀띠로 고생한 적도 있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만큼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가능성을 본 서린바이오로부터 10억 원을 투자받았고 이후 이름도 현재의 사명으로 바꿨다.

김병철 서린메디케어 대표가 경기도 동탄 서린글로벌센터 사무실에서 올해 받은 대한민국 명장 명패를 가리키며 향후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탄=송영규 선임기자


의료 장비 제조는 진입 장벽이 높은 업종이다. 지멘스 등 글로벌 업체들이 장악한 시장을 뚫고 들어가려면 기존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이 필요했다. 김 대표가 플라스마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플라스마는 고체·액체·기체와는 다른 이온화된 ‘제4의 물질’로 불린다. 특히 살균력과 재생 능력이 탁월해 피부 미용에 사용할 경우 통증 없이 피부 속까지 스며들게 할 수 있다.

효과가 분명한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고교 선배이자 평생 플라스마를 연구해온 이춘우 박사를 영입해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돌입했다. 현재 보유한 40여 개의 지식재산권 중 3분의 2가 플라스마 관련인 것은 그만큼 그의 열정이 뜨거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업 1년 후 첫 여드름 치료 기기 ‘에크노’를 내놓는 등 매년 꾸준히 신제품을 선보였다. 지난해 전체 매출액의 절반에 달하는 20억 원을 이 분야에서 올리고 수출 대상국을 50여 개국으로 늘린 것도 이러한 노력 때문이다.

김 대표는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매출은 더 늘 수 있었을 것”이라며 “내년에는 새로운 플라스마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에도 힘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모토는 ‘쉽게, 더 쉽게’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여야 최고의 효율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초등학교 5~6학년생이면 다 사용할 수 있게 만들라고 요구한다”며 “제품이 완성되면 여직원에게 드라이버 하나와 사용설명서만 주고 제품을 다시 만들어보게 하는 테스트를 거친다”고 덧붙였다.

후배 연구자들에 대해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모든 경우의 수를 모두 따져봤다는 점”이라며 “결과를 볼 때까지, 끝을 볼 때까지 해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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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독자부 글·사진=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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